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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가_느슨한 상상

갤러리와부, 경기도, 경기문화재단 모든예술31

2023년 12월 4일

참여작가: 김가은, 김인영, 김지영, 신재훈, 엄태신, 이서희, 정선욱, 정선주, 정훈, 최다정
기획자: 정선주

여가란 일이 없어 남는 시간, 일을 하다가 쉬는 틈, 휴식을 겸한 다양한 취미활동이 포함되는 경제 활동 이외의 시간으로 정의된다. 여가에 대해 18세기 후반 런던의 문화계를 이끌었던 영국의 시인이자 평론가인 새뮤얼 존슨 (Samuel Johnson, 1709년~1784년)은 여가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가 문명화를 측정하는 잣대라고 말했다.


과연 동시대 현대인들의 여가는 어떠한가?


전통적인 여가 활동 중 하나인 전시 관람은 침묵과 거리두기, 사진 촬영금지 등의 특별한 금기와 함께 관객에게 어떤 적극적인 행위도 요구하지 않는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핸드폰을 매개로 한 SNS 소통으로 여가 시간의 대분분을 소비한다. 사진과 동영상의 기록을 공유하고, 타인이 공유한 내용을 탐관한다. 그리고 동일한 패턴의 더 많은 이야기와 흔적을 남기기 위해 스스로에게 적극적 행위를 요구한다. 우리는 작품을 관조하는 여가와 작품에 참여하며 소통의 방식으로 확장하는 여가의 차이에 주목한다. 그리고 서로가 각각 다른 방향의 우회를 통해 예술이 삶과 구분되기도 하고 통합되기도 하는 지점을 확인하고자 한다. [여가_느슨한 상상]展은 전시에 참여하는 예술가와 시민들이 좀 더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고 적극적으로 지원사업에 참여하게 함으로 지역 안에서 상상할 수 있는 여가의 다양한 모습을 가시화하는 데 목적이 있다.



시민 참여자 작품(위 좌측부터)

조서희 / 이시현 / 김서연 / 채솔민 / 이한빈 / 우한나 / 황하

요시다 코이치 / 요시다 마리코 / 용유찬 / 김승우 / 송혜연


김가은_Read_종이에 마블링, 드로잉_가변크기_2023

'드로잉과 채집된 소품으로 이야기를 읽는다.'라는 의미의 두 번째 작업이다. 마블링의 색이 물 위에서 서로 부딪히며 생기는 경계, 그 경계와 경계 사이에 이야기를 담아 나이도 하는 일도 생각하는 것도 다른 우리의 여가는 어떻게 다른지 가시화하였다. 함께 작업한 채솔민, 이한빈에게 여가생활 중 생각날 때마다 몇 시 몇 분인지, 뭘 하고 있는지, 여가를 보내는 그 순간의 기분이 어떤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자유롭게 기록하고, 가능하다면 사물에 대한 채집도 요청했었다. 그들의 여가 안에 어떤 사물이 채집될지 기대하며 주고받은 사물의 드로잉이 교차된 여가의 기록을 작업했다. 주로 영상, 음악에 편중되어 있는 그들의 일상을 읽으며, 시각에 집중된 나의 일상과 적지 않은 갭을 느낀 작업이었다.


김인영_Shit(쉿)!_스크린 영상_가변크기_2023

나에게 여가란 모든 것이 침묵하는 조용한 순간으로 정의된다. 이것은 자극적인 정보소리와 쉴틈 없는 SNS소통의 소리와 같은 보이지 않는 소리와, 마찰에 의해 생성되는 우리의 물리적 소리가 모두 제거된 순간을 의미한다. 이 순간을 맞이했을 때 나는 온전한 여가를 즐기게 되고, 휴식을 맞이한다. 제목에서 의미하듯 나의 휴식을 깼을 때 뱉어내는 비속어(Shit!)와 조용히 하라는 신호(쉿!)을 동시에 전달하는 이 작품은 아두이노와 Touch Designer를 통해 가시화하였다. 공간에 놓여진 소리 센서에 감지되는 소리에 견고하던 형태가 깨지며 기존의 형태를 알아볼 수 없는 모습으로 변화하고, 소리가 잦아들었을 때 다시 기존의 형태를 되찾아가는 과정을 담아낸다. 다양한 소리가 감지될수록 실시간으로 변화하는 모습은 더욱 다양하기에 관객이 적극적으로 소리를 내도록 요구된다.


김지영_Less is More(Dark-less)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각 72.7×60.6cm_2023

'구멍'은 하나의 프레임 속 풍경임과 동시에 빛이 들지 않아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공간이다. 어둠 속 작은 공간은 그 어떤 공간보다 크고 풍부한 세상을 그리게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빛의 결여는 하나의 이미지를 잃는 대신 무엇보다 뚜렷한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이 드넓은 세상은 나의 여가 시간을 자유롭게 상상하며 유영하도록 이끈다. 함께 작업한 김승우와는 자주 게임 'League of Legend(LoL)'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가시간에 게임을 주로 하는 우리는 게임을 하며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날 매칭되는 팀운이나 챔피언, 운영 전략이 될 수도 있고, 게임이 끝난 후 먹을 저녁메뉴나 해야 할 일, 내일의 일정을 생각하기도 했고, 펜타킬이나 나의 캐리로 승리하는 즐거운 상상을 하기도 한다. 우리가 여가시간을 보내며 바라보는 이미지는 같으나 그 시간을 차지하는 우리의 머릿속 이미지는 어떨까? 나는 뚜렷한 이미지를 불러오는 구멍 속 어둠 속에서 참여자의 여가_느슨한 상상을 만나고자 한다.


신재훈_해독_리넨에 먹, 염료_238×148cm_2023

「해독」은 SNS 소통 중 느낀 상대적 결핍감에서 비롯된 우울함에서 벗어나고자, 새벽 바다를 향해 홀로 막연한 걸음을 지속했던 개인적 해독 행위의 연장선이자 중간 결과물이다. 대다수 현대인은 핸드폰으로 대표하는 디지털 매체를 사용해 SNS 활동, 영상 시청에 여가 시간을 소비한다. 타인의 여가 혹은 취향이 반영된 매체를 반복해 소비하다 보면, 무의식 속에 여가와 취향의 기준이 세워진다. 기준은 자신의 심리적 건강 여하에 따라 다른 영향을 미친다. 다름을 인식해 자기 기호를 확립하는 데 도움이 되거나, 다르기에 불만족을 느껴 자기 상황을 결핍하게 인식하도록 만든다. 긴 시간 지속된 물리적 단절과 교류의 부재 속 SNS 소비는 나에게 부정적으로 작용하였다. 다른 이의 기준을 빌려와 비교하길 반복하며 여가 시간은 목적과 자유성을 상실해 우울감을 증폭하는 시간이 되었다. 과한 감각 작용은 어느덧 중독을 일으켜 내게서 삶의 자주성을 앗아갔다. 중독을 인식한 어느 날, 자신을 온존하기 위한 해독 행위로서 도보 여행길에 올랐다. 디지털 매체를 금한 채 시각이 제한되는 한밤중을 택해 걸었다. 걸음을 지속하는 중 매체를 접하고픈 번뇌를 여러 번 겪었으나, 시야가 차단된 채 육체의 움직임이 늘어가고 반복될수록 우울감은 희석되어 걷는 행위 자체를 즐기게 되었다. 도보 여행을 택했던 자신의 자주성을 회복하고 여가가 다시 온전히 작용하는 순간이었다. 작업은 여행길에서 감각했던 심리 상태와 반복해 걷는 행동과 유사한 신체 움직임으로 제작되었다. 모필로 상념과 우울감을 대변하는 이도 저도 아닌 형상을 쌓았다가, 다시 불분명한 형상으로 덮어 지우기를 반복한다. 좌선한 채 붓을 겹쳐 놀리는 과정이 반복될수록 행위의 흔적이 중첩되어 상을 이루게 된다.


엄태신_RE:Eye-Contact_폐목재_90×70×70cm_2023

사회적 거리 두기 해제 후 2년이 지난 현재, 상상 같았던 긴장 풀린 오랜 습관이 느긋하게 나의 틈을 메우고 있다. 이 조형물은 버려지거나 사용 후 남은 자투리 나무로 제작되었으며, 다시 한번 눈 맞춤을 통해 모든 것과 대회를 시도하고자 한다. 함께 작업한 요시다 부부는 오랜 기간 알고 지낸 지인이다. 부부는 종종 나의 작업공간을 점유하고 여가를 즐긴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여가를 만끽한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 같다. 전시를 통해 작업에 대한 고민과 느슨한 상상이 이들 부부를 작업의 세계로 이끄는 계기가 되었고, 마치 긴 시간 나의 여가를 대신 즐겨준 이들의 작품을 촘촘히 들여다보는 여유를 갖게 되었다.


이서희_Loading...00'00"_이젤, 타자기, 트레싱지, 스톱워치_128×70×125cm_2023

'여가'란 일을 하다가 쉬는 틈이라고 정의된다. 이 오브제는 2017년 '미묘한 소통'전에 전시한'From day To day_힐링' 자판기 프로젝트의 연장선으로 제작되었다. '힐링'에서 '여가'로 텍스트가 바뀐 것처럼 나의 작업 역시 지난 5년동안의 시간의 흐름을 드러낸다. '힐링'을 쫓던 나는 이제 '여가'를 즐기고 있나?. 나는 작업을 통해 '여가'에 대해 질문하고, 관객은 타자기 앞에 앉아 대답해야 한다. 결코 쉽지 않은 이 행위에는 관객이 타자기 작성법을 익히고, 연습하고, 수정하며 답하는 과정과 그 시간을 축적하는 장치가 포함되어 있다. 관객 참여로 완성되는 이 작품은 관객이 타자기를 치는 동안 작가에게는 여가가 획득된다는 직관적 메시지가 담겨 있다. 또한 작가는 타자기와 치열하게 싸우는 관객을 관조하다 늘어나는 피드백 종이를 읽으며 다시 작업 할 준비를 시작한다. 함께 작업한 시민 참여자 황하는 수능이 끝난 고등학교 3학년으로, '여가' 없이 수능을 향해 치열하게 달렸던 1년을 마무리하며 '여가'에 대한 정의를 다음과 같이 내렸다. 첫째, 편안한 장소여야 하며 이동 중이면 안된다. 둘째, 의식이 있어야 한다. 셋째, 공부, 입시 미술, 면접 준비를 하고 있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위와 같이 정의된 '여가'를 보낸 일주일간의 시간을 기록한 결과물을 작가, 관람객과 함께 공유하며 '여가'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정선욱_lamp_목재, 도자_가변크기_2023

아무 생각 없이 '멍'하는 행위를 흥미롭게 생각하는 현대인의 일상 이면에는 끊임없이 접하는 이미지들, 스마트폰과 영상 플랫품, 밈과 짤 등 잠시의 휴식도 허용하지 않는 문화가 고착화 되어 있다. 흔히 '불멍'이 주는 쉼은 이러한 삶의 반동이라 생각된다. 자투리 흙을 주워담아 눌러 제작한 도자 오브제와 버려진 의자 프레임을 사용하여 만든 거치대가 만나 탁상용 램프를 만들게 된 것에는 이러한 삶의 여지가 담겨있다. 도자 오브제의 틈 사이로 비치는 빛은 일렁이는 그림자를 만들고, 미세하게 움직이는 빛을 따라 '불멍'을 가능하게 하고, 그 안에는 어떠한 자극의 개입없이 시각과 상상만 작동하는 여가시간을 구축한다.


정선주_superposition_중첩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97cm_2023

이미지 너머의 풍경, 이미지 안에 비친 풍경, 이미지 밖 이미지의 중첩_superposition을 기억하는 우리의 시지각은 기억 안에서 결코 분리될 수 없는 지금의 나를 받아들인다. 이 작품은 노동과 쉼, 팽팽함과 느슨함이 늘 공존하는 작가의 작업실, 작가의 자화상을 담은 것이다. 함께 작업한 시민 참여자 조서희와 이시현은 조금은 특별한 동료이다. 그리고, 만들고, 꿰메고, 뜨는 일을 쉼없이 즐기는 이들은 작업의 조력자이자 자극의 원천이다. 이들의 여가는 나의 일이고, 이들의 느슨한 상상은 나를 팽팽하게 긴장하게 한다.


정훈_Angle_청자토, 백토, 분청토, 흑토, 미송나무 합판, 와이어, 거울_100×50×50cm_2023

이 작업은 작가의 'time's' 작업에서 연장된 궤적이다. 'time's' 작업은 자신 스스로에 대해 고민하는 나 자신의 모습을 작업으로 표현 하고자 했던 작업이다. 각 작업의 나무틀 안의 작은 도자들은 내 자신의 고유한 시간 즉 한정된 시간 안에서 개별적인 시간들이라고 할 수 있다. time's작업이 시간이라는 틀 안에서 맴돌고 있는 자신을 표현 했다면 'angle' 작업은 시각의 틀 안에 있는 자신을 표현해 보고자 하였다. 사방에서 볼 수 있던 작업이 단지 하나의 프레임 안에 단편적인 모습으로 비춰지는 것은 마치 내가 누군가에 단편적으로 비춰지지 않을지 하는 고민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자신에 대한 여러 생각과 고민을 하면서도 손은 계속해서 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은 이 전시의 제목과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한다.


최다정_7.4409984,127.1476162_디지털 프린트, 골판지, 못_각 94.5×94.5×8.5cm_2023

팬데믹과 전쟁, 재난, 재해가 동시다발적 이루어지는 위기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그 영향을 도시 공간의 변형을 통해 알 수 있다. 도시는 역사가 동시대적으로 변형된 장소로서의 공간이다. 파괴하고 재건되기를 반복하는 도시와 시대가 변용하는 이유는 변화된 사회구조 상황 속에서 인간으로 존재하기 위한 욕망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나의 작업은 이러한 오늘날의 삶의 형태가 나타나게 된 계기(역사적 사건)와 사람과 도시(공간)의 흔적을 쫓아 '이동'하며 거기에 의문을 제기하고, 관계 맺으며 이를 다시 '수집' 과 '재편집'의 수행을 통한 시각 언어로 기록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번 작품은 2022년부터 성남 구시가지인 수정구 신흥동의 레지던시에 입주하여 지역과 주민들의 삶을 돌아보게 된 것을 계기로 제작하게 되었다. 이 지역은 과거 8•10 성남(광주대단지 사건, 1971년)민권운동의 강제 이주된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도시이다. 현재는 신흥역을 중심으로 재개발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반면, 항쟁지의 중심이었던 이곳은 비좁은 골목과 작은 필지, 밀집된 주거 구역으로 아직 재개발을 기다리고 있다. 나는 약2년간 신흥동의 수많은 골목과 오르막길, 내리막길을 오가며, 생존권을 다투던 항거 현장이 다가구와 다세대가 형성되며 남긴 삶의 모습들을 관찰할 수 있었다. 이에 지역 주민들의 역사의 상흔이 담긴 파편에 주목하여 이를 조망하고 렌즈 너머로 수집하였다. 이렇게 획득한 재료에 담긴 지역과 공동체의 서사를 살펴보며 이에 더해 규범화되지 않은 시각적 경험과 상상력을 포괄적으로 콜라주 하듯 엮어 냄으로써 오늘날의 지금, 우리, 여기를 박제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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